장애인 임금은 주는 대로…최저임금도 그림의 떡
월평균 52만7000원…최저임금 보장해도 지원금 등 기업 손해는 없어
한국은 1991년부터 ‘장애인 고용의무제도’를 시행했다. 고용의무제도 적용을 받는 국가·지자체, 상시근로자 50인 이상 사업체의 장애인 고용률은 2001년 0.79%에서 2022년 3.12%로 높아졌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장애인을 고용한 기업은 전체 190만4866개 기업 중 3.4%인 6만4115개에 불과하다. 2022년 말 기준 장애인 노동자는 21만명으로 전체 노동자 중 1.41%에 그친다. 전체인구 대비 장애인구 비율(5.2%)의 4분의 1 수준이다.
장애인 의무고용률은 2023년 현재 국가·지자체·공공기관이 3.6%, 민간기업이 3.1%다. 의무고용률에 미치지 못하면 부담금을 내야 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강조되면서 조금씩 개선되고 있지만, 장애인을 고용하는 대신 부담금 납부를 택하는 관행은 여전히 강하다. 특히 사업체 규모가 클수록 장애인 고용률은 답보상태다. 2022년 8534개 사업체에서 약 8586억원의 고용부담금을 징수했는데, 전체의 14.6%에 불과한 1000인 이상 사업체가 부담금의 59.4%를 냈다.
“최저임금 지급은 인간으로 보느냐의 문제”
최근의 화두는 장애인 노동자의 저임금 문제다. 2021년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의 ‘최저임금적용제외 근로장애인 전환지원사업 평가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직업 재활시설을 이용하는 주된 장애 유형은 발달장애인으로 82.3%를 차지했다. 이들의 월평균 임금은 2020년 기준 52만7000원, 평균 훈련수당은 10만4000원으로 최저임금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 유엔 장애인권리협약 제27조는 장애인은 스스로 선택한 노동을 통해 생계를 유지할 권리가 있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지금 장애인은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최저임금법 제7조는 정신장애나 신체장애로 근로 능력이 현저히 낮으면 사업주가 고용노동부 장관의 인가를 받아 적용을 제외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이렇게 최저임금 적용에서 제외되는 인원은 2020년 9060명인데 이중 90%가량이 장애인 직업재활시설에서 일한다. 장애인복지법에 따르면 장애인 직업재활시설은 “일반 작업환경에서는 일하기 어려운 장애인이 특별히 준비된 작업환경에서 직업훈련을 받거나 직업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시설”이다.
직업재활시설은 직업능력이 극히 낮은 장애인에게 가장 낮은 임금을 지급하는 ‘장애인 직업적응훈련시설’, 직업능력이 상대적으로 낮은 이들에게 최저임금을 주지 않아도 되는 ‘장애인 보호작업장’, 그리고 최저임금 이상을 받는 ‘장애인 근로사업장’ 등 3가지로 나뉜다. 직업적응훈련시설에서 보호작업장, 근로사업장을 거쳐 개방된 고용시장으로 옮기도록 돕는 것이 직업재활시설의 목적이다.
최근 국내외에서 장애인의 기본권 보장과 차별 금지 차원에서 최저임금 적용제외 제도의 폐지, 최저임금 보장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다.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는 2022년 9월 제614차 회의에서 한국 정부가 제출한 국가보고서에 대한 최종견해를 채택하면서 노동시장에서 장애인 참여를 배제·제한하는 차별적 법률에 우려를 표했다. 최저임금 적용제외를 허용하면서 많은 장애인 노동자가 최저임금 이하를 받고, 보호작업장으로 분리된 채 개방된 노동시장으로 이동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정부는 2020년 직업재활시설에서 일하는 장애인들이 최저임금 이상을 받을 수 있는 사업장으로 옮길 수 있도록 전환지원사업을 시작했다. 최저임금 적용 제외 장애인을 고용한 재활시설 운영법인에 고용촉진수당, 취업성공수당 등 장려금을 주는데, 법인과 시설이 대부분 분리 운영돼 직업재활시설의 임금인상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그래서 직업재활시설 수당이나 지원금을 신설해야 한다는 제안이 나온다.
김원호 단국대 특수교육과 교수는 “최저임금을 보장하는 건 생산성과 별개로 우리가 이 사람을 인간으로 보겠다는 의미”라며 “기업에서 장애인 1명을 고용하면 거의 2000만원 가까이 지원을 받기 때문에 부담이 그리 크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고용률이라는 수치보다는 장애인의 특성을 잘 아는 사람을 인사 관리자로 채용해 관리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조현정 한걸음마음상담센터 센터장은 “장애인이 고용돼 일하고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점에선 의미가 있지만, 보호작업장에서 일하는 장애인들의 임금은 사실상 부르는 게 값이 되는 상황”이라면서 “최저임금제도가 장애인 고용을 막는 게 아니라 장애인을 꺼리는 편견이 훨씬 크게 작용한다”고 말했다. 조 센터장은 “충분히 일할 수 있음에도 장애인이라는 낙인 탓에 일을 못 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장애인이 아닌 사람으로 먼저 봐주고 장애를 개인차, 그 사람이 갖는 특성으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애인 학생의 STEM 과목 접근성은 제로”
최중증 장애인이 소득 활동에 나서면 사회보장제도에서 이탈될 수 있어 섬세한 작업이 필요하다. 또 장애인의 노동을 생산활동에만 국한하지 않는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 김 교수는 “긱노동 등 전통적인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사용자 관계에 맞지 않는 일이 등장했다”며 “최중증 장애인의 일자리 문제도 무조건 직장에 출근해서 일한다는 전통 노동의 개념을 깨고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집에만 머물면 사회적 비용이 굉장한데, 이들이 지역사회에서 장애인 인식 개선 활동을 하거나 환경 정화나 문화예술 활동을 하면 이를 사회적 차원의 일자리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나 지자체의 장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정책이 돌변하는 것도 문제다. 김 교수는 “장애인 고용은 사회보장과 고용, 연금 등이 다 맞물려 있어 범부처 협업이 중요하고, 좌우 교체에 따른 일관성의 문제도 있다”며 “기관 간 협업이 안 되거나 명확한 이유 없이 예산이 들쑥날쑥 변하면서 사각지대가 생기고, 도움을 받지 못하는 장애인 당사자와 기업이 많이 생긴다”고 말했다.
변화하는 일자리 지형에 적응하는 것도 과제다. 반도체·인공지능 관련 일자리가 주목을 받고 있지만, 장애인의 절대다수는 수학·과학 등 이공계 분야 학습의 접근성이 떨어진다. IT 대기업에서 이공계 분야 장애인을 고용하려 해도, 애초에 인재를 키워낼 수 없다. 김 교수는 “수학 과목에 있어서 시각장애인의 접근성이나 청각장애인이 과학 실험에 참여할 때 커뮤니케이션을 보장하는 게 전혀 없다”며 “미국에는 강력한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있어 대학이 접근성 보장을 안 하면 안 되는 상황인데, 우리의 경우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있음에도 실효성은 굉장히 부족하다. 그래서 장애 대학생은 거의 전부 비이공계를 전공하는데, 실제 일자리는 이공계 쪽에서 많이 나오니 현실과 반대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