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도 안 좋은데 집안일이나 하지”…여성장애인 취업 막는 편견
장애인 경제활동참가율 男 47.1%·女 24.2%…비장애인보다 격차 커
“장애인 여성 취업, 사회생활·개인적 성장 계기 동시 제공”
“어차피 국민기초생활 급여 받는데 왜 취업하려고 하세요? 힘들게 일하지 말고 그냥 받으시는 게 낫지 않아요?”, “몸도 안 좋은데 집안일이나 하지 무슨 돈까지 벌어?”
7일 서울 강서구 장애여성인력개발센터에서 만난 전상준 센터장은 여성 장애인이 취업에 도전할 때 이런 말을 듣는다며 “사회적 분위기조차 취업을 응원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여성 장애인은 노동시장에서 가장 취약한 지위에 있다고 평가받는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 지난달 30일 공개한 ‘2023년 상반기 장애인경제활동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 5월 기준 15세 이상 장애인 남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47.1%, 고용률은 45.4%인데 반해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24.2%, 고용률은 23.5%로 남성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경제활동참가율은 15세 이상 인구 중에서 취업자와 실업자를 합한 경제활동인구의 비율을 의미한다. 이 비율이 높을수록 실업 여부와 상관없이 일단 일하고자 하는 사람이 많다는 의미다.
즉 장애인 여성은 취업을 한 번도 한 적이 없거나 시도조차 하고 있지 않은 비율이 장애인 남성의 두배가량 높다는 뜻이다.
장애인의 성별 격차는 비장애인과 비교해 두드러진다.
전체 인구의 경제활동참가율은 남성 74.1%, 여성 56.7%, 고용률은 남성 72.1%, 여성 55.2%로 장애인과 비교하면 성별 격차가 훨씬 작다.
여성 장애인은 일자리를 구하더라도 열악한 지위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남성 장애인 임금근로자의 비정규직 비율은 60.5%인데 반해 여성은 83.0%에 달했다. 올해 8월 기준 전체 인구의 비정규직 근로자 비중은 37.0%다.
전 센터장은 이 같은 격차의 배경으로 적지 않은 장애인 취업자가 단순 노무에 종사하고 있는 현실을 꼽았다. 장애인 남성은 육체노동을 해야 하는 공장 생산직 등에 취업해 전문성을 쌓을 기회가 주어지지만, 여성은 상대적으로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센터는 장애인 여성이 노동시장에서 이중적인 취약 구조에 놓여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서울시가 2012년 전국 최초로 설립한 기관이다. 서울시 거주 장애인 여성이 16만4천여명이 센터의 지원 대상이다.
장애인 직업재활시설은 전국 곳곳에 있지만, 여성 장애인을 대상으로 전문적인 취업 정보와 1대1 상담, 일자리 알선부터 사후관리까지 제공하는 기관으로는 전국에서 센터가 유일하다.
장애인 여성에게 취업은 생계유지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서울 동작구에 사는 중증 척추 장애인 여성 박모(26) 씨는 지난 8월까지만 해도 가족이나 친구와의 교류도 없이 밤낮이 바뀐 채 집에서 게임만 하던 은둔 청년이었다.
은둔 생활이 몇 년째 이어지다 보니 사회로 나오는 것이 두려웠지만 온라인에서 센터의 장애 여성을 위한 재택근무 홍보물을 보고 취업에 도전했다. 센터는 박 씨의 생활방식을 바로잡기 위해 매일 전화를 걸어 아침 몇 시에 일어났는지, 오늘은 무엇을 하며 보냈는지를 확인했다.
이후 자기소개서 작성, 모의 면접, 컴퓨터 훈련 단계를 밟아 박 씨는 지난달 말 인공지능(AI) 학습 데이터에 이름을 붙이는 ‘데이터 라벨러’로 취업하는 데 성공했다. 불과 3∼4개월 만에 몇 년간의 은둔생활을 청산한 셈이다. 그는 현재 하루에 4시간씩 재택 근무하며 100만원 이상의 월 소득을 올리고 있다.
센터는 내년 사업계획에 전문 일자리 및 디지털 일자리 대비 직업훈련에 중점을 두고 더 많은 장애인 여성이 박 씨처럼 양질의 일자리에 진입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전 센터장은 “장애인 여성의 취업은 사회생활과 개인적 성장의 계기를 동시에 제공한다”면서 “오직 수입의 많고 적음 관점에서만 보고 장애인 여성의 취업을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