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군인·경찰 난청 심각… 이비인후과의사회
한국이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초고령화 사회 진입을 앞둔 가운데 노인을 비롯한 군인, 경찰 등 난청 취약계층에 대한 긴급 대책이 필요하다는 의료계의 지적이 나왔다. 난청만 잘 관리해도 치매나 우울증 등 사회적 문제가 되는 질환을 상당수 예방할 수 있고, 노동생산력을 향상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데 정부가 이를 방치하고 있단 것이다.
대한이비인후과의사회는 23일 기자간담회에서 노인성 난청에 대한 긴급 지원과 군인·경찰의 소음성 난청에 대한 대책을 촉구했다. 의사회는 지나치게 엄격한 청각장애 기준을 완화하고, 국가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음향외상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군인·경찰에 대한 정기적인 청력검진과 신속치료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밝혔다.
학회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보청기가 필요한 인구 중 약 10%만이 보청기를 사용한다. 정상 청력은 25dB 이내이며, 25~40dB의 경도난청은 대화에 불편감을 느끼기 시작하고 40dB 이상의 중등도 난청은 보청기 착용이 필요하다. 그러나 국민건강영양조사를 분석한 2015년 자료에서 40dB 이상의 중등도 난청을 앓고 있는 사람 중 12.6%만이 보청기를 사용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는 다른 국가의 보청기 사용률보다 매우 낮은 수준이다.
이는 보청기 가격에 대한 부담이 작용한 영향이 크다. 2010년 한국보건 의료연구원에서 시행한 연구를 보면 보청기가 필요함에도 사용하지 않는 가장 주요한 원인은 보청기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보청기 구매 가격의 부담이었다. 정부의 보청기 지원은 청각장애(양측 60dB 이상, 또는 한쪽 40dB&반대쪽 80dB 이상) 판정을 받을 때만 받을 수 있다.
대한이비인후과의사회 황찬호 회장은 “현재 중등도 난청(40dB~60dB)으로 보청기가 필요하지만, 장애판정을 받지 못해 보청기 구매할 때 급여 지원을 받지 못하는 인구는 국내에서 약 130여만명 정도로 추산된다고 밝혔다. 그는 “이들이 보청기를 구매할 때 건강보험 지원을 받는다면 경제적으로 취약한 노년층에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이며, 치매나 노인성 우울증 같은 난청이 매개하는 질환의 발병률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로 난청이 치매와 우울증을 유발한다는 국내외 연구는 다수 존재한다. 미국 존스홉킨스대에서 발표한 연구에서는 중등도 난청의 경우 치매 발병률이 3배, 고도 난청의 경우 치매 발병률이 5배까지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신 연구에선 청력 손실로 보청기 착용한 노인들은 그렇지 않은 노인보다 향후 3년간 치매 위험이 낮게 나타났다.
황찬호 회장은 “건강보험공단에서 시행한 난청 노인의 보청기 건강보험 적용방안 연구 결과를 살펴보면 65세 이상, 양측 50dB 이상의 난청이 있는 어르신들에게 본인부담률 50%를 적용해 보청기를 지원할 경우 추가 재정소요액은 연 200억에서 400억 정도로 추산된다”며, “노인 보청기 지원은 막대한 예산이 들지 않으며 노인의 치매, 우울증 등으로 인한 사회적 손실을 생각할 때 충분히 정부가 고려할 수 있는 수준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더불어 사격훈련, 시위대 관리 등으로 인해 음향외상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군인과 경찰관에 대한 대책도 촉구했다. 음향외상은 갑작스럽게 강한 소음에 노출되었을 때 청각신경의 손상이 발생하며 생기는 질환이다. 큰 소음에 일정시간 노출될 경우에 발생하며, 폭발음 같은 매우 강한 소리는 단 한 차례의 노출로도 음향외상을 일으킬 수 있다. 일반적으로 85dB 이상의 소음에 30분 이상 노출될 때 소음성 난청이 발생한다.
100dB에서 보호장치 없이 15분 이상 노출될 때 또는 110dB에서 1분 이상 규칙적으로 노출될 때 청력 손실의 위험에 처하게 된다. 사격과 같은 폭발음은 140~170dB의 소음에 해당한다.
음향외상이 발생할 경우 이명, 난청, 이충만감, 어지럼증 등 다양한 증상을 호소하게 된다. 초기 치료만 잘하면 쉽게 회복되지만 군·경 의료체계에선 제대로 된 초기 치료가 어렵다.
대한이비인후과의사회 오승하 국제학술대회장은 “입대 후 정기적인 사격훈련과 군사작전 때 소음노출로 인해 젊은 나이에 음향외상이 발생하는 안타까운 일이 빈번하게 일어난다”며, “그러나 즉시 진료가 어려워 문제가 발생한 이후 사격·군사작전 등으로 인해 생긴 문제임을 입증하기 어렵고, 민간 병원을 찾았을 땐 이미 가장 중요한 초기 치료 시기를 놓쳐 청력 회복이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다”고 밝혔다. 오 회장은 “국가에 봉사하는 이들 직군의 특성을 생각한다면 국가에서 정책적으로 이들의 청력건강을 미리 돌보아야 한다”며, “많은 재원과 인력이 들어가는 사업도 아니다”고 밝혔다.
학회 측은 이미 전국에 정밀청력검사를 시행할 수 있는 이비인후과 병의원들이 있어 추가 장비·인력 등을 마련하기 위한 재원이 소요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오승하 국제학술대회장은 “이미 전문가와 시설이 갖춰진 이비인후과가 전국에 있는 상황에서 각각의 군부대나 경찰시설에 정밀청력검사 시설을 설치하는 건 예산낭비다”며,
“군·경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즉시 민간병원에서 진단, 치료를 받을 수 있게 시스템만 개선해주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