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이 바깥보다 더 더워”… 벌써 여름이 두려운 노인·취약층
서울 낮 최고기온이 35도까지 오르며 폭염특보가 발효된 19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옆 원각사 노인무료급식소에는 불볕더위에도 식사하려는 노인들의 줄이 길게 이어졌다. 정수리에 꽂히는 햇볕을 피해 모자를 쓴 노인들은 자신들의 순서를 기다리며 연신 부채질을 했다.
급식소에서 밥을 먹은 뒤 탑골공원으로 돌아온 김완규(85)씨는 “딱히 갈 데도 없고 급식소는 밥도 주고 안에 에어컨과 선풍기도 있어 여름 겨울 구분 없이 온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렇게 나와 그늘을 찾아다니다가 오후 3∼4시면 집으로 돌아가는 게 일상”이라고 덧붙였다.
탑골공원 안에는 그늘이 많지 않았다. 노인들은 정자나 동상 앞 계단 등 그늘진 자리를 찾아 삼삼오오 모였다. 다른 곳에서 나눠준 무료 도시락을 탑골공원 정문 앞 바닥에 앉아 먹던 박중선(76)씨는 “그나마 그늘이라 여기서 먹는다”고 말했다. 박씨는 한 손으로 나무젓가락을 쥐고 다른 손으로 부채질하면서 “기초수급비로 고시원에 사는데 잘 씻기도 어려운 여름이 이제 시작이라 조금 걱정”이라고 전했다.
그늘을 찾아 몸을 움직이기는 노숙인도 마찬가지였다. 서울역 지하에서 노숙 생활하고 있는 박감술(53)씨는 “오전 5시가 되면 서울역 직원이 쫓아내고 대합실에 있으면 눈치 주니까 아예 역 밖에 있을 수밖에 없다”며 “낮에는 교회 천막 안에 있다가 오후 3시쯤 서울역 건물 앞에 그늘이 생기면 그 밑에 있는다”고 토로했다. 해의 방향에 따라 달라지는 그림자 위치에 맞춰 자리를 이동한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영등포구 한 무료급식소 앞에는 오전 11시가 되기 전부터 쪽방촌 주민들이 길게 줄을 섰다. 그늘에 서지 못한 주민은 머리 위에 수건을 뒤집어쓰기도 했다. 구본영(57)씨는 “주민 대부분이 해마다 에어컨 없이 여름을 난다”며 “밤에는 창문을 다 열어도 더워서 자다가 몇 번씩 깬다”고 하소연했다. 쪽방촌이 생겼을 때부터 줄곧 여기 살았다는 이규순(68)씨는 “내년에 재개발한다고 집주인들이 에어컨을 달아 주지 않는다”며 “건물이 낡아 에어컨을 설치할 여건이 안 되는 방도 많다”고 설명했다.
쪽방촌 골목에는 전날 구청이 설치했다는 스프링클러가 물을 뿜고 있었다. 하지만 이마저 전선이 얽혀 있는 골목에는 설치할 수 없었다. 무더위에 의지할 냉방용품이라고는 선풍기뿐이지만 하루 종일 틀어 놓다 보니 선풍기가 고장 나는 일도 잦다고 한다. 영등포 쪽방촌을 지원하는 한 자선단체 관계자는 “오늘만 해도 고장난 선풍기가 4대 나왔다”고 밝혔다.
냉방이 어려운 환경일수록 폭염은 혹독해진다. 일찍 찾아온 더위에 노인과 아동 등 취약계층의 여름나기에 대한 우려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인천 A보육원에 근무하는 사회복지사 윤모(21)씨는 “아이들 10명 중 7명에게 땀띠가 났는데 손톱으로 긁어 상처가 났다”며 “선풍기를 틀어주고는 있지만 더워서 아이들이 낮에도 엎드려 있거나 종일 칭얼거린다”고 전했다. 움직임이 많은 아이들은 더위도 많이 타지만 보육원은 전기료 부담으로 에어컨을 켜지 못하는 실정이다.
실외 노동자들도 폭염과 전쟁을 벌였다. 광진구 청담대교에서 일하던 시설물 안전진단사 변모씨는 “안전 조끼나 낙하할 때 추락을 막아 줄 장비 등을 차야 해 더 덥다”며 함께 일하는 이들과 함께 물과 차가운 커피를 들이켰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연평균 1500명 정도 온열질환자가 발생하는데 올해는 벌써 온열질환 추정 사망자가 발생했다. 지난달 20일부터 지난 17일까지 전국에서 취합된 온열질환자는 104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87명)보다 빠르게 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