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인권과 그 부모의 인권…서울 ‘장애인 탈시설’ 찬반 격론
장애인 탈시설 조례 폐지 여부 입법예고
시의회 누리집에 찬반 의견 5620건 쇄도
장애인이 시설에서 나와 지역 사회에 정착하게 돕는다는 내용의 서울시 조례를 둘러싸고 찬반 격론이 벌어졌다. 장애인 인권을 중요시해야 한다는 쪽과 부모 인권을 고려해야 한다는 쪽이 정면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격론이 벌어진 곳은 서울시의회 누리집이다. 8일 서울시의회 등에 따르면 시의회는 지난 3일 “‘서울특별시 장애인 탈시설 및 지역사회 정착지원에 관한 조례 폐지조례안’ 그 입법 취지와 주요 내용을 시민에게 널리 알려 의견을 구하고자 입법예고한다”고 밝혔다.
입법예고된 ‘서울특별시 장애인 탈시설 및 지역사회 정착지원에 관한 조례 폐지조례안’의 내용은 2022년 서울시의회에서 제정된 ‘서울특별시 장애인 탈시설 및 지역사회 정착지원에 관한 조례(이하 장애인 탈시설 조례)’를 말 그대로 폐지하자는 내용이다.
이 조례에는 서울시 관할 거주 시설에서 생활하는 장애인이 시설을 떠나 지역 사회에 정착할 수 있게 돕는다는 내용이 담겼다. 조례에 따르면 서울시는 장애인의 지역 정착을 위해 지원 주택과 자립 생활 주택을 제공하고 활동 지원 서비스를 제공하며 소득 보장을 위해 공공 일자리를 줘야 한다.
그런데 서울시민 2만7435명이 이 조례를 폐지하라고 청구했고, 이에 따라 서울시의회 의장은 자동적으로 조례 폐지안을 발의하게 됐다. 오는 19일 개막하는 서울시의회 임시회에서 조례 폐지안을 심의하고 표결할 예정이다.
임시회 심의를 앞두고 서울시의회는 주민 의견을 수렴하는 입법예고 절차를 밟았고 지난 3일부터 7일까지 5620건에 달하는 찬반 의견이 쇄도했다. 서면과 우편, 전자우편(이메일) 등을 통해 접수된 의견까지 합하면 건수는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단 한 건의 의견도 게재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사안을 둘러싼 대립이 심각함을 짐작할 수 있다.
조례를 폐지하라는 쪽은 장애인 부모 측이다. 부모들은 돌봄 부담을 호소하며 이 조례에 반대해 왔다. 충분한 준비가 없이 탈시설화가 진행될 경우 가장 큰 피해를 입는 사람은 당사자인 발달장애인과 그들을 보호해야 하는 부모라는 게 반대 이유였다.
반면 조례를 존속시켜야 한다는 쪽은 장애인 단체들이다. 장애인을 비자발적으로 시설에 입소시킨 후 지역 사회로부터 격리시켜 장기간 수용 생활을 하도록 하는 것이 인간의 존엄성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는 주장이다.
이 같이 첨예한 의견 대립은 입법예고 과정에서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조례 폐지에 찬성하는 이들은 장애인들을 계속 시설에 둬야 한다고 주장한다.
방모씨는 자신을 “중증발달장애인을 자녀로 둔 부모”라고 전하며, “탈시설을 법으로 명시하는 것은 당사자에게 위험한 일이다. 탈시설을 강요하지 말고 주거 형태를 늘려 자신의 욕구에 맞게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임모씨는 “부모 목 조르는 탈시설법 폐지해 달라”며 “우리 아이들의 특성을 안다면 여기서 멈추어 달라. 모르신다면 하루만 데리고 살아보고 시행하라. 정말 죽겠다. 탈시설은 우리에겐 죽으란 말이다. 살려 달라”고 말했다.
박모씨는 “탈시설 정책은 시설 외부에서 생활이 불가능한 중증 장애인 및 그 가족에게는 사형 선고나 마찬가지인 정책”이라고 주장했다.
지난해 4월13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 인근에서 열린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 창립대회’ 참석자의 전동휠체어에 ‘시설은 감옥이고 죽음이다’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이 걸려 있다. 안모씨는 “의사소통이 불가해 자립 불가능한 중증 발달장애인을 3~4명 정도의 자립주택에 가둬놓게 되면 감시의 눈이 사라지게 돼 현재 시설에서 발생하는 인권 침해보다 더 많은 문제가 발생될 것이 확실하다”며 “결국 시설에서 나가게 된 이 분들이 갈 수 있는 곳은 원가정일 것인데 이것은 결국은 그 가족의 고통을 가중시키는 사회적 살인 행위”라고 했다.
또 유모씨는 “3살 지능의 중증장애인을 자립으로 내모는 전장연(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과 그 소속 단체들을 해체해야 한다”며 “우리 부모들에게는 시설이 아이들을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안식처”라고 밝혔다.
김모씨는 “탈시설 조례는 전장연에 서울시 보조금을 퍼붓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라며 “반드시 폐지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조례 폐지에 반대하는 이들은 장애인을 시설에 가둬 두지 말고 지역 사회에서 지내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모씨는 “장애인들을 시설에 가둬 격리해야 하는 대상이 아닌 함께 어울려 사는 동료 시민으로 생각하라”고 촉구했다.
다른 이모씨는 “인권은 보편적 권리로서 선택적으로 제한돼서는 안 된다. 지역 사회에서 함께 살 권리도 지켜져야 한다”며 “죄도 없는 사람들을 감옥과 같은 시설에 수용하지 말아 달라. 이건 시민으로서 명령”이라고 말했다.
또 민모씨는 “시설은 군대와 같다”며 “군대에서 몇십년의 생활을 하는 장애인들은 자발적으로 가신 분들이 드물고 선택지가 없어서 가신 분들이 많다”고 강조했다.
정모씨는 “시설을 중심으로 한 복지 정책의 결과는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빈곤과 차별 그리고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불평등”이라며 “시설이라는 공간의 배타적인 소유와 관계로 인한 각종 비리와 인권 침해, 그것이 아니더라도 누구든 갇혀 살고 싶은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장애인과 부모의 인권과 복지가 모두 중요하다는 점에서 어느 한 쪽을 일방적으로 편들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대립이 첨예한 가운데 서울시의회가 장애인 탈시설 조례의 존속 여부를 놓고 어떤 결론을 내놓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