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연금에 여유, 든든”…노인빈곤 해소엔 한계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해주는 것 같습니다.”(1954년생 김창남씨)
“고정적으로 들어오는 소득이라서 든든하죠.”(1955년생 나경희씨)
“마음에 여유가 생기더라고요.”(1949년생 황정옥씨)
올해로 도입 10년을 맞은 기초연금 이야기다. 2014년 7월부터 만 65세 이상 노인 중 소득하위 70%에 해당하면 달마다 고정적으로 기초연금이 지급됐다. 10년 사이 급여액은 월 최대 20만원에서 33만4810원까지 인상됐다. 수급자 수는 435만명에서 지난해 말 기준 651만명으로 늘었다. 기초연금은 노인빈곤율을 낮추고 노인 우울감 해소에도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기초연금만으로는 노인빈곤 해소에 역부족인 상황이다. 2022년 기준 상대적 노인빈곤율은 38.1%(통계청)에 달한다. 노인인구 증가로 재정부담도 커지고 있다. 국민연금과 더불어 기초연금도 개혁의 시기를 맞고 있다.
■내 삶에 기초연금이란
기초연금은 은퇴자들의 삶에서 무슨 의미일까. 지난 7월 16일 서울 광진구 대한은퇴자협회 사무실에서 기초연금을 받는 세 사람을 만났다.
김창남씨(70)는 은퇴 전 작은 학원의 수학 강사로 일했다. 국민연금(1988년 도입)이 생겼을 때 몇 년 보험료를 납부했지만 예상 연금 수령액이 많지 않아 최소 가입기간 10년을 채우지 못하고 일시금으로 받았다. 현재 기초연금은 부부 감액 제도(20% 삭감)에 따라 26만7000원가량을 받는다. 부인은 별도로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을 받고 김씨는 다문화가정 학생들에게 수학을 가르쳐주는 일을 해 돈을 번다. 소액 개인연금 등을 포함해 부부의 평균소득은 월 350만원가량. 그 가운데 기초연금은 53만원 남짓이다. 김씨의 말이다.
“우리 두 사람이 한 달에 200만원 안쪽으로 쓰는 것 같습니다. 제가 굉장히 아끼는 스타일인데, 교통비도 한 달 2만원 이내로 쓰고 외식은 아예 안 합니다. 그 대신에 남은 돈을 모아서 1년에 한 번씩 여행을 갑니다. 만족하면서 살죠. 기초연금은 정기적으로 정부가 보장해주는 확실한 소득이라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봅니다. 최소한 ‘먹는 것’에 대해선 보장해주는 거죠. 기초연금이 없었으면 뭔가 더 많이 (소비를) 줄여야 하는데, 고맙게 생각합니다.”
김창남씨가 지난 7월 16일 서울 광진구 대한은퇴자협회 사무실에서 기초연금이 삶에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주간경향과 인터뷰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지역 복지관 등에서 체조 강사로 일하고 있는 나경희씨(69)는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을 합쳐 월 50만원가량 받는다. 남편도 비슷한 수준으로 두 연금을 받고 있다는 나씨는 “특별히 아픈 데 없으면 두 사람이 별도로 크게 지출할 게 없으니까 의식주는 충분히 해결하고, (연금·강사 소득 등으로) 그 안에서 잘 살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같이 사는 자녀로부터 약간의 생활비를 받고, 또 자신은 연로한 어머니에게 얼마의 용돈을 드리면서. 이런 나씨에게 기초연금은 국민연금과 더불어서 “열심히 살아온 스스로한테도 감사한 마음이 들게 한다”고 했다. “우리 정말 열심히 살았잖아요. 쌀 한 톨 못 버리고. 많이는 못 넣었지만 지금 국민연금도 나오고, 기초연금이 고정적으로 나온다는 게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나경희씨가 지난 7월 16일 서울 광진구 대한은퇴자협회 사무실에서 기초연금이 삶에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주간경향과 인터뷰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황정옥씨(75)는 40대 후반에 큰 교통사고를 당해 약 5년간 병상 생활을 했다. “출장 뷔페 일을 하다가 길게 아프고 나니까 어떻게 살아야 하나 걱정이 많았어요. 의식주 해결하기 바빴고, 아이들 둘 가르치느라고 노후 준비를 못 하고 이 나이가 돼버렸어요.” 황씨는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더해 한 달 60만원 정도 받는다. 딸이 매달 용돈을 보내주는데 혹시라도 딸이 용돈을 주지 못하는 상황이 오더라도 “기초연금을 받으니 기본적인 삶은 유지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황정옥씨가 지난 7월 17일 서울 광진구 대한은퇴자협회 사무실에서 기초연금이 삶에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주간경향과 인터뷰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아도 되니, 크게 아프지 않았으면 하는 게 세 사람의 공통된 바람이었다. 현재 소득으로 생활하는 것에 큰 무리는 없지만 의료비는 걱정이기 때문이다. 황씨는 교통사고 이후로 민간 보험을 들기 어려웠고 김씨는 암보험, 나씨는 실손보험이 있지만 보장성이 약한 상품이라고 한다.
“건강이 허락하면 죽을 때까지 일을 하고 싶습니다.” 세 사람이 한목소리로 말했다. 이들의 한 달 소득을 보면, 공적연금과 비슷한 수준의 소득이 일자리에서 나왔다.
황씨는 투병 중에 동화구연, 실버 체육, 노인 심리 미술 등 각종 자격증을 따뒀다고 한다. 지금은 색종이 접기 강사로 일한다. 그는 “내가 80을 앞두고 있지만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이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아플 때 낫기만 하면 봉사하며 살겠다”는 마음을 실천하는 것이기도 하다. 나씨는 “자녀들한테 돈 달라는 말을 안 하려고 남편이랑 열심히 살고 있다”며 “또 제가 일을 하면서 저를 보고 어르신들이 기뻐하면 자부심도 느끼고 운동하고 공부하면 건강도 지키는 일이기도 하고, 할 수 있는 날까지 하려고 한다”고 했다. 김씨는 “나이 들면 안 좋은 생각도 드는데, 일하면 그런 생각을 잊어버릴 수 있고 내가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도록 도움이 된다”며 “끝까지 일하고 싶다”고 했다.
기초연금이 노후생활에 경제적 지원뿐만 아니라 우울감 감소 등의 효과를 내고 있다는 연구 결과(노인 다차원적 빈곤이 우울에 미치는 영향에서 이전소득의 조절적 역할에 관한 탐색적 연구·송치호·2023)가 있다. 기초연금과 일자리가 은퇴 후 삶에 소득을 보장하는 동시에 정서적 지원도 하는 것으로 보인다.
■기초연금, 노인빈곤율 낮췄지만
기초연금에 대해 전문가들은 “지난 10년 사이에 가장 빠르게 양적으로 성장한 복지제도이고, 노인빈곤 해소라는 효과를 확연하게 달성한 제도”(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집행위원장)라고 평가한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국민연금의 세대 간 이전이라는 역할 측면에선 미가입자들은 사각지대에 있었다. 그걸 메울 기초연금이 도입된 것 자체가 굉장히 의미가 크다”라고 했다. 최영준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도 “(외환위기인) 1997년 이후 가구 분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노인의 삶이라는 게 최악의 상황으로 빠져들어 갔는데 기초연금은 그 상황을 개선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보건복지부 자료를 보면, 노인빈곤율(65세 이상 인구 중 소득이 중위소득 50% 미만인 비율)은 기초연금 도입 전 2013년 46.3%에서 2021년 37.6%로 감소했다. 다만 노인빈곤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평균 18%·2018년) 회원국 가운데 최고 수준이다. 노인세대에서도 나이가 많을수록 빈곤율이 높게 나타난다. 2021년 기준 76세 이상 연령층은 2명 중 1명(51.4%)이 빈곤층에 속한다.
‘최극빈층’에 속하는 기초생활보장제 수급자들은 기초연금을 ‘사실상’ 받지 못한다. 기초생활보장 생계급여·기초연금 모두 신청해야만 받을 수 있는데, 둘 모두 신청한 A씨의 경우를 가정해보자. 올해 생계급여 1인가구 최대급여액은 71만3102원으로, A씨가 소득이 ‘0’원이면 이 급여를 모두 받는다. 소득이 20만원이 있으면 51만3102원을 생계급여로 받는다. A씨 통장에 기초연금이 33만4810원이 들어오면 이는 A씨의 소득으로 간주돼 생계급여액에서 깎인다. 기초연금 통장에 급여가 들어오면 그만큼 생계급여 통장에서 나가는 식이다. ‘줬다 뺏는 기초연금’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서울 용산구에서 홀로 생활하는 이호산씨(78·가명)는 건설현장에서 일하다 60대가 되면서 자연스레 일거리가 줄어 약 10년 전부터 생계급여를 받고 있다. 올해는 생계급여로 매월 60만원 정도를 받는다. ‘한 달 생활비로 충분한지’에 대한 질문에 이씨는 이렇게 답했다.
“아, 부족하죠. 그런데 없는 사람들은 절약하면서 사니까 살아지죠. 저는 술·담배도 안 합니다. 조금 돈 모이면 친구들 만날 때 차 한 잔씩 하는 거고…. 겨우 먹고만 사는 거죠. 그런데 먹고만 사는 건 돼지 취급하는 거 아닙니까.”
이씨는 생계급여를 받는다고 기초연금을 받지 못하는 것은 정책이 불합리한 것이라고 말했다. “아끼면 살아”지지만 ‘먹는 것’만 해결됐다고 삶의 질이 충분히 보장되긴 어렵기 때문이다. 기초연금 기준연금액이 올라도 생계급여 인상으로 이어지진 않는다.
복지부 산하 ‘2023년 기초연금 적정성 평가위원회’는 지난해 9월 작성한 최종보고서에서 “보충성 원칙을 따르는 기초생활보장제에서 기초연금을 차감하는 현행 방식은 바람직하지만, 최빈층 노인이 다른 70% 이하 노인이 받는 급여에서 제외되는 현상에 대한 지적이 계속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개선책으로는 장애인 연금처럼 별도의 수당으로 생계급여에 기초연금 일정액을 더해 지급하거나, 소득인정액 산정 시 근로소득 30%를 공제해주는 것처럼 기초연금도 30%로 공제하는 방안(노년유니온·2023년 11월 기초연금 40만원 약속한 대통령 회견에 대한 성명) 등의 제안이 나오기도 했다.
■개혁 요구받는 기초연금
2023년 기초연금 적정성 평가위는 “현행 기초연금 기준연금액은 소비지출액 대비 26.4%, 국민연금 A값(전체 가입자 평균 소득) 대비 11.3% 등 다른 지표와의 상대적 관계를 고려할 때 적정한 수준으로 판단”했다. 다만 해외 국가들과 비교해 기초연금액 수준이 낮고 저소득 노인의 소득 수준 개선이 불충분하다고 봤다. 윤석열 정부는 기초연금을 40만원으로 인상하겠다고 했다. 기초연금 기준연금액은 물가인상률에 연동돼 매년 오르기 때문에 정부 공약 이행 여부와 상관없이 기초연금은 몇 년 후 40만원에 가까워질 것으로 보인다.
“노후 준비를 못 해 놓았더니 여행 한 번 가기가 어렵습니다. 기초연금이 오른다고 하면 문화생활 한 번씩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황정옥씨)
“물가 오르는 거, 특히 식비 생각하면 지금보다 연금액이 더 오르면 좋긴 할 것 같아요. 그런데 자녀세대가 얼마나 (세금을) 부담될까 걱정도 되고요, 부모세대한테 배려를 조금 하면 좋겠다 싶은 생각도 들고요. 서로에게 좋은 방향으로 제도가 바뀌면 좋겠어요.”(나경희씨)
“올려주면 좋아하는 여행을 한 번 더 갈 수 있으려나요. 그런데 저는 인상에 찬성하지 않습니다. 미래소득을 끌어다 쓰는 게 미안한 일인 것 같아서요. 주면 고맙지만 인상 안 해줘도 하등 섭섭하지 않습니다.”(김창남씨)
노인빈곤은 여전한데 노인인구 증가에 따른 재정부담이 커진다. 기준연금액을 올리는 것만으론 해법이 될 수 없다. ‘누구에게 얼마의 기초연금액을 주어야 하는지’ 다시 짜는 작업이 필요하다. 연금 구조개혁을 한다면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의 관계를 재설정하는 논의가 우선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김향미 기자 sokhm@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