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위험하니 운전 막자? 일본의 현명한 대처를 보라

[리뷰] KBS1 <추적 60분> ‘노인과 운전’

이준목(seaoflee)

지난 7월 1일 오후 9시 26분경, 전 국민을 충격에 빠뜨린 ‘서울 시청역 차량 역주행 사고’로 9명의 귀중한 목숨이 유명을 달리했다. 당시 가해 차량을 운전한 이는, 운전경력이 풍부한 68세의 고령 운전자였다.

시청역 사고 전후에도 전국에서 유사한 차량 돌진 사고들이 연이어 발생하며 인명피해가 속출했다. 여기서 가해자들은 모두 시청역 사고와 유사하게 60-70대 이상의 고령 운전자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이로 인해 최근 사회적으로 고령 운전자에 대한 불안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단순히 운전자의 나이에만 주목하기보다는, 왜 이러한 사고가 일어나게 됐는지, 고령 인구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사회 구조 등을 넓은 시각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신중론도 제기되고 있다.

▲ KBS <추적 60분> 화면 갈무리 ⓒ KBS

지난 4일 방송된 KBS1 탐사 프로그램 <추적 60분>에서는 ‘노인과 운전’ 편을 통해 최근 속출하고 있는 고령 운전자 교통사고의 이면에 가려진 대한민국 고령화 사회의 그늘을 조명했다.

시청역 사고의 피해자 중 한명인 고 김인병씨는 시청 공무원으로 회식 후 야근을 위해 회사로 돌아가던 중 참변을 당했다. 유족인 형 김윤병씨는 동생의 묘를 찾아 아직도 그의 죽음을 믿을 수가 없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가해 차량 운전자는 사고 당시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듣지 않았다며 ‘급발진’을 주장했다. 경찰은 수사 결과, 차량 결함보다는 운전자의 ‘운전 미숙’이 원인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발표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운전자의 신발바닥에 남아있던 가속 페달 문양을 주요한 증거로 확보했다. 칠순이 가까운 고령이었던 운전자가 순간적인 착각으로 페달을 오조작해 사고가 벌어졌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국과수에 따르면 지난 5년간 감정한 334건의 급발진 주장 사고 중 정확한 감정이 불가능했던 사례를 제외하면 나머지 287건이 모두 페달 오조작으로 판명났다고 한다. 이중 대다수가 60-70대였고, 나이만큼이나 운전경력도 오래된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국과수 관계자는 “운전자가 실수하면 당황하게 된다. 사고 당시 운전 패턴은 가속 페달을 밟았다가 떼는 걸 반복한 뒤, 그 후 지속적으로 가속 페달을 밟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고령 운전자의 사고 패턴을 설명했다.

늘어날 수밖에 없는 운전자 고령화

고령 운전자의 교통 사고비율은 5년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여기에서 운전자 본인 포함 사망률이 전체 사망사고에서 약 30%까지 차지할 정도로 그 위험성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2023년 11월 강원 춘천에서는 83세의 고령 운전자가 횡단보도를 정상적으로 건너던 여성 3명을 차로 치여 숨지게 했다. 가해 운전자는 신호를 못봤다고 주장했다. 사고지점은 시속 60km 속도제한구간이었으나 운전자의 차량은 무려 시속 97km의 속도로 돌진한 것으로 드러났다.

가해자는 고령이라는 점을 들어 재판부에 선처를 호소했고 1심에서 감형을 받았다. 이에 사고 유족들은 “가해자가 본인의 신체능력에 대한 인지가 있었을 텐데 무리하게 운전하다 사고를 낸 것이다. 그런데도 어떻게 고령이라는 이유로 감형을 해줄수 있냐”며 강력하게 이의를 제기했다. 항소심에서 재판부는 고령으로 인한 신체능력 저하가 사고의 근본적인 원인일 수 있다는 내용을 판결문에 적시했다.

현재 택시·버스·화물차 등 운수종사자들은 고령 운전자의 비중이 매우 높다. 현재 전국 택시 기사의 약 45%가 65세 이상의 고령 운전자인 것으로 드러났다. 현재 사업용 운수종사자들은 연령에 따라 만 65-69세 이상은 3년마다, 70세 이상은 매년 정기적으로 자격유지 검사를 받는다.

그런데 2023년 한국교통안전공단 기준의 고령 운전자의 98.5%가 자격유지 검사에서 적합 판정을 받으며 변별력에 문제가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 운전자의 고령화는 앞으로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하다.

한편으로 생계가 걸려있는 현장의 고령 운전자들은 운전능력에 대한 평가 기준이 나이만이 돼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특히 한 택시 운전자는 고령화 사회가 된 대한민국의 현실을 근본적으로 지적하며 “고령 인구를 자꾸 제재해 들어가면 화물차·버스·택시가 다 멈춰버린다. 그러면 나라 전체가 스톱이다”라고 주장했다.

제작진은 연령대에 따른 ‘운전중 돌발상황 반응시간’을 비교실험한 결과, 고령 운전자가 비고령 운전자에 비하여 제동 반응속도가 약 두 배 가량이나 늦는 것으로 드러났다. 전문가는 “고령 운전자 교통사고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초기에 위험운전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는, 주의 단계에서의 오류가 교통사고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인들이 운전 포기하기 힘든 이유

그렇다면 해외에서는 고령 운전자 교통사고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을까. 일본에서는 2019년 4월 80대 운전자의 ‘이케부쿠로 폭주사고’로 횡단보도를 건너던 모녀가 숨지고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이케부쿠로 교통사고 유족인 마츠나가 타쿠야씨는, 자신이 겪은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하여 교통범죄 유족회 활동에 적극 앞장서왔다. 특히 일본에서 2022년 5월부터 개정도로교통법이 시행되며 고령자 운전면허 갱신심사가 시험제도로 바뀌고 내용도 더 엄격해진 것은 이 사건의 영향이 컸다. 75세 이상 고령 운전자 중 일정 항목에서 위반 이력이 있는 운전자는 면허갱신시 운전기능검사가 의무화됐다.

또한 65세 이상의 고령 운전자들은 차량에 ‘실버마크’를 부착하게 했다. 주변에 자신이 고령 운전자임을 알려서 양보와 방어운전을 유도해 사고를 줄이게 한 것이다. 한국에서도 참고할 만한 대목이다.

전문가들은 고령 운전자들이 운전을 오랫동안 했다고 해서 지나친 자신감을 가지는 것은 금물이라고 강조한다. 전문의인 김광준 세브란스병원 노년내과 교수는 “우리는 일상적으로 매일같이 걷고 일어서고 눕는 행동을 반복한다. 이렇게 평생을 잘 해왔던 일도 갑자기 문제가 생겨서 낙상을 할수 있다. 운전도 마찬가지다. 익숙하다고 해서 언제까지 내가 익숙한 걸 잘한다는 보장은 없다”고 설명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2040년이 되면 전체 운전자 5명 중 한 명은 고령 운전자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고령인구가 경험하고 있는 교통 현실의 실상을 폭넓게 이해해야할 필요가 있다.

특히 농촌지역은 고령 운전자들의 비중이 높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동권이 제한되는 노인들이 운전면허를 쉽게 포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전라남도 진도군의 한 마을은 주민 대부분이 65세 이상인 초고령 마을이었다. 주민들은 차량이 없으면 병원이나 마트에 가기 위해 외부로 이동하거나 평범한 일상생활을 누리는데도 각종 불편함이 따른다고 밝혔다.

운전면허를 반납한 노인들은 대중교통에 의지하다 보니 활동 반경에도 제약이 생기고, 이동 시에 무거운 물건을 들고 다니는 것도 쉽지 않다. 농촌 지역의 노인들에게 운전은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생계나 목숨의 문제와도 직결돼 있는 것이다. 고령 운전자들은 “면허 반납을 유도하려면 일회성인 금전 지원보다 차가 있을 때와 비슷한 이동권을 보장해달라”고 요구한다.

2023년 기준 65세의 고령 운전자의 비중은 전체 운전면허 소지자의 13.9%에 이른다. 하지만 이중 최근 3년간 고령 운전자의 면허 자진 반납비율은 2.4%에 불과했다. 억지로 반납만 촉진하기보다는 고령 인구가 겪어야 할 불편함을 제도적으로 덜어줘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장치 개발하고 보조금 지원… 일본에서 배울 점

 7월 24일 오후 서울 시청역 역주행 사고 현장에 방호 울타리가 설치돼 있다.

▲ 7월 24일 오후 서울 시청역 역주행 사고 현장에 방호 울타리가 설치돼 있다. ⓒ 연합뉴스

역시 고령 운전자가 많은 일본은 면허제도 개선 외에도 기술적으로 고령 운전자의 안전운전을 지원하기 위해 다양한 해법을 모색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이케부쿠로 참사 이후 자동차 생산업체들과 지속적인 협력과 연구를 통해 자동 안전 장치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자동 충돌 방지 긴급 제동장치가 탑재된 ‘서포트카’ 도입을 의무화하고 보조금 지원제도를 시행한 것도 그 일환이다. 현재는 더욱 향상된 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ACPE)가 기본으로 탑재된 상위 차종 개발도 꾸준히 진행중이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ACPE의 신차 설치률이 93%까지 늘어난 2021년에는 9년 전에 비하해 교통사고와 사상자 숫자가 절반 가까이 감소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러한 일본의 사례는 고령 운전을 단순히 ‘제재’의 대상이 아니라, ‘제도 개선’과 연관지어 생각해야 하는 명확한 이유를 보여준다.

대한민국 국토교통부 역시 고령 운전사 사고 문제에 대한 제작진의 질의에 ‘향후 고령운수종사자의 자격유지검사를 강화하고 고령층 이동권 보장과 첨단안전장치 제작을 유도하겠다’는 등의 복안을 제시했다. 다만 그 구체적인 실현 여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부분이다.

김광준 교수는 “노인이 사고가 났다고 하면 ‘노인’가 아니라 ‘왜’ 이 사고가 났는지가 더 중요하다. 노인들이 사고를 많이 낸다고 하면 그렇지 않도록 방법을 찾아드려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제도나 시스템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 폭넓게 논의가 돼야지, 그냥 ‘고령층의 운전은 위험하다’는 것으로 해결방식을 찾으려 해서는 절대 안된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시청역 사고 희생자인 고 김인병씨의 딸은 “모든 고령 운전자들을 안좋게 보는 것은 아니다. 이 사건을 통해 많은 고령 운전자들도 인지능력이 떨어지면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느끼셨을 것이다. 단지 이런 사건들이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흐지부지 묻혀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제일 크다”고 전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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