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400명 직업 뺏는 서울시…“월급 75만원도 끝”
권리중심 공공일자리 예산 0원
올해 12월까지만 일할 수 있어
“장애인 수급비만 받고 살았었는데, 일하고 적지만 월급을 받으니 자존감도 높아졌어요.
첫 월급 받아서 통닭을 사드렸더니 어머니께서 ‘너밖에 없구나’라는 말을 하셨을 때를 잊지 못해요.
”지난 10일 서울 종로구 동숭동 노들장애인야학에서 만난 뇌병변장애인 이영애(57)씨는 와상형 휠체어를 타고 이렇게 말했다.
이씨는 지난해 10월부터 서울시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 사업’(권리중심 공공일자리)에 참여하면서 ‘노동자가 되는 꿈’을 이뤘다.
하지만 이씨를 포함한 최중증·탈시설 장애인 400명은 올해 12월을 끝으로 ‘월급쟁이’ 생활이 끝난다.
서울시가 내년도 예산에 권리중심 공공일자리 사업을 전혀 반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씨는 “내년부터 임대아파트에서 자립하기로 했는데, 이제 어떻게 먹고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며 “일주일 15시간 일해 한달에 75만원씩 받은 것으로 겨우 모은 1000만원 적금도 이제 깨야 할 판이다”라고 했다.
그는 “내년에도 동료 장애인 노동자들과 함께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같은 권리가 있다는 것을 알리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권리중심 일자리 사업은 2020년 서울시가 노동 능력을 인정받기 어려운 최중증·탈시설 장애인에게 노동권을 보장한다는 취지로 도입했다.
이 사업을 통해 중증장애인 노동자들은 장애인 권익옹호 및 문화예술, 장애인 인식 개선 교육 등의 활동으로 ‘유엔 장애인권리협약’ 등을 시민들에게 알렸다.
사업 초기 약 12억원(260개 일자리) 예산으로 시행한 사업은 지난해 약 58억원(400개 일자리)이 투입되는 등 확대돼왔다.
지난 3월 서울 중구 서울시청 인근 도로에서 열린 지속 가능한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를 위한 결의대회를 마친 참가자들이 행진하고 있다.
그러나 보수 정치인·언론이 해당 일자리 사업 예산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가 유용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폐지 여론이 일었다.
지난 6월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전장연이 권리중심 일자리 사업 보조금으로 집회에 참여한 장애인들에게 ‘일당’을 줬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이후 서울시는 권리중심 공공일자리 사업을 수행하는 단체에 지침을 보내 “시위, 집회, 캠페인 활동은 일자리 활동에서 제외한다”고 했다.
탁영희 노들야학 활동가는 “권리중심 일자리는 장애인들이 직접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을 알리는 ‘캠페이너’ 역할을 수행하도록 만들어진 것”이라며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이들이 집회뿐만 아니라 일상 속 차별을 모니터링하고, 문화예술 등으로 장애인 권리를 알리는 활동을 했는데 이에 대한 오해가 컸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일자리를 잃은 장애인들이 새로 도입되는 ‘장애 유형 맞춤형 특화 일자리 사업’으로 다시 일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장애인 단체는 서울시가 제시한 업무가 최중증 장애인에게 적합하지도 않고, 일자리 규모도 250명으로 줄어들어 현실성이 없다고 주장한다.
박경석 전장연 대표는 “서울시가 제시한 직무들은 그동안 최중증장애인들은 접근할 수 없었다”며 “보수 정치인과 오세훈 서울시장의 말 한마디에 일을 통해 사람들과 만나고, 자존감을 회복해온 최중증 장애인들의 일자리가 한방에 무너졌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