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노인’이 실버아파트에서 경험한 신세계
[서평] <초보노인입니다> (김순옥/민음사/2023년 6월)
에세이집 <초보노인입니다>를 쓴 작가, 김순옥은 요즘 말로 상당히 ‘쿨한’ 사람이다. 작가는 전원주택에서 살다가 다시 아파트로 이사를 하기 위해, 어느날 남편과 함께 공인중개사를 찾는다. 그곳에서 공인중개사로부터 “전국 최대 규모의 분양형” 실버아파트를 소개받는다. 창 밖으로 대형병원 장례식장이 내려다보이는 아파트다.
장례식장이 내려다보이는 아파트라니. 보통 사람들 같으면, 그 사실을 알기 무섭게 인상부터 썼을 것이다. 더러는 면전에서 화를 낼 수도 있다. 그런데 어딘가 남다른 데가 있는 이 부부, 그 자리에서 이렇게 말한다. “아유, 여기서 살다가 죽으면 바로 장례식장으로 직행하면 되겠어. 아주 좋아요.” 그러고는 호쾌하게 아파트 매매 계약을 마친다.
하지만 그 아파트는 작가가 그렇듯 만만하게 볼 곳이 아니었다. 장례식장 때문이 아니다. 작가는 그 아파트가 ‘실버아파트’라는 걸 간과했다. 그 실버아파트는 일반 아파트와 달리 80대 노인들이 주로 모여 산다. 결국엔 그 아파트가 작가를 예전에는 알지 못했던 낯선 세계로 끌고 들어간다. 그 아파트가 매사 쿨한 모습을 보이던 작가를 수시로 울리고 웃긴다.
그 아파트에서 대체 어떤 일들이 벌어졌던 것일까? <초보노인입니다>는 이제 막 노인 대열에 합류한 작가가 실버아파트에서 살면서, 그곳에서 경험한 일들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이 책을 쓴 작가는 60대 초반이다. 스스로 ‘초보 노인’을 자처한다. 남편이 65세를 넘겨 나라에서 ‘공식 노인’으로 대접을 받는 데 반해, 작가는 아직 그 ‘지위’에 오르지 못했다.
그래서 그런지 작가는 어디 가서 자신이 “어머님!” 소리를 들으며 노인 대접을 받는 게 꽤 어색하다. 작가는 행색부터 남다르다. 그것도 젊은 사람들 눈에는 상당히 쿨해 보일 수 있다. 외출할 때는 항공점퍼에 야구 모자를 쓰고 나간다. <초보노인입니다>는 그러니까 평소 “노인인 듯 노인 같지 않은 노인”으로 사는 작가가 관찰한 노인의 세계를 보여주는 책이다.
계약은 쿨하게… 후회는 대책 없이
초보가 달리 초보가 아니다. 어디선가 실수를 저지르게 마련이다. 초보 노인인 작가 역시 실수를 저지른다.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고, 덜컥 실버아파트 계약을 한 것도 초보라서 가능하다. 환갑이 넘은 나이에 새 아파트 매매 계약을 했으니 아마도 그곳에서 여생을 보낼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게 자신을 “좌충우돌, 고군분투의 삶”으로 이끌 줄은 미처 몰랐다.
이 초보 노인, 쿨해도 너무 쿨했다. 진즉에 알았어야 할 사실이 하나 있다. 그건 그가 계약한 아파트가 일반 아파트와는 많이 다르고, 그곳에 거주하는 주민들 모두 “은발의 노인들뿐”이라는 사실이다. 그걸 몰랐던 탓에, 작가는 그곳에서 그야말로 신세계를 경험한다. 미리 알았다면, 앞서 그렇게 쿨한 얼굴로 아파트 매매 계약을 하지는 않았을 그런 경험들이다.
초보 노인 부부가 실버아파트에서 겪게 되는 일을 들여다보기 전에 먼저 그곳 실버아파트가 어떤 곳인지를 알아두는 게 좋겠다. 실버아파트는 ‘실버 맞춤형 주거지’다. 다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작가가 입주한 실버아파트에서는 게스트룸, 식당 등을 비롯해 주민들이 사우나, 탁구, 마작 등을 하면서 여유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다양한 시설을 제공한다.
이곳의 실버아파트는 또 병원이 가까워서 좋다. 그리고 주민들 대부분 “걷다가 넘어질까 조심”하는 사람들이다 보니, 층간소음을 걱정할 일도 거의 없다. 나이가 들어 서로 이해할 수 있는 처지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것도 장점으로 작용한다. 365일, 하루 세 끼 식사를 제공하는 것도 특이하다. 삼시세끼 차려내는 일로 골머리를 앓던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한 서비스다.
하지만 그런 장점들도 누군가에게는 단점으로 작용한다. 우선, 세 끼 식사비가 모두 관리비에 포함된다. 식사를 하든 말든 매월 일정액의 식사비가 관리비로 빠져나간다. 그래서 관리비가 다른 아파트들보다 비싼 편이다. 작가는 특히 음식 맛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아파트 식당에서 제공하는 “대부분의 메뉴가 입에 맞지 않”아 식당을 찾지 않게 된다.
예습이 필요했던 실버아파트 생활
실버아파트에서 겪는 문화 충격은 식당 음식 맛에 비할 바가 아니다. 초보 노인 부부는 실버아파트에 입주하던 첫날부터 낯선 경험을 하게 된다. 초보 노인 부부가 이사를 하느라 정신없는 틈을 타, 이웃집 노인이 불쑥 집 안으로 걸어 들어와 알은체를 한다. 일반적으로 아파트에서 누군가 이사를 한다고 그 집 안을 들여다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 아파트에서는 그런 ‘관습’이 전혀 힘을 쓰지 못한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실버아파트는 여전히 인간미가 남아 있는 곳이라고도 할 수 있다. 확실히 주민들이 다른 아파트들보다 이웃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인다. 그래서 때로는 ‘간섭’이 많다고 느껴진다. 작가는 그런 실버아파트에 잘 적응을 하지 못한다. 그곳 주민들과도 잘 어울리지 않는다.
애초 “아직 노인이 될 준비가 안 된” 상태였던 작가에게 실버아파트는 적절한 주거 시설이 아니었던 셈이다. 좋다 나쁘다를 떠나서, 실버아파트는 “이제 막 60대가 된” 작가에게 “낯선 세계”였다. 초보 노인인 작가에게 “실버아파트에서 산다는 것은 그냥 노인들이 모여 사는 곳에 산다는 것 이상으로 무엇인가에 대한 예습이 필요한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하루는 아파트에서 ‘밥값전쟁’이 벌어진다. 아파트 식당에서 “물가상승으로 인해 부득이하게 밥값을 인상해야” 한다며 설문조사를 실시한다. 그런데 그 내용이 다소 황당하다. 설문 내용으로 ‘식비 인상 6,000원’과 ‘식비 인상 7,000원’을 제시하고는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란다. 선택 항목 중에 ‘식비 인상 반대’는 보이지 않는다.
처음부터 그냥 밥값을 6,000원으로 인상한다고 했으면 별 말이 없었을 텐데, 마치 선택의 여지라도 주는 것처럼 포장한 게 주민들의 기분을 상하게 만든다. 주민들은 인상안을 놓고 찬성파와 반대파로 나뉜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고, 그나마 반대파 수도 겨우 “7분의 1 정도”에 그친다. 설문은 하나 마나, 밥값 인상은 기정사실이 되고 만다. 그걸 보고 한 주민이 일갈한다. “똥을 싸라, 미친놈들.”
2년 넘게 걸린 탈출, 그 끝에 남은 미련
작가는 결국 실버아파트에 들어와 살기 시작한 지 6개월이 될 무렵부터 그곳에서 빠져나갈 방법을 궁리한다. 그런데 ‘탈출’이 쉽지 않다. 우선, 남편이 이사를 마뜩잖게 생각한다. 게다가 그때 마침 부동산 시장이 침체기로 접어들어, 좀처럼 매수자가 나타나지 않는다. 작가는 곧 그곳에 발이 묶인 처지가 된다. 그러면서 나름 주변 환경에 적응하려 애쓰지만, 그래도 마음 같지 않다.
그후 실버아파트 생활을 한 지 2년 8개월이 지나서야 겨우 실버아파트를 벗어나게 된다. 그 사이 6개월 전과는 달리, 작가의 심경에도 약간의 변화가 일어난다. 아파트를 파는 대신 싼 가격에 전세를 놓는다. 언젠가 다시 이곳에 돌아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작가는 이사를 가기 전, 남편에게 말한다. “그래요. 한 10년 있다가 다시 옵시다. 둘 다 살아 있으면.”
이사를 가던 날, 이웃집 할머니가 또 찾아온다. 할머니는 작가의 손을 잡으며 “정들자 이별이네. 근데 언제 와? 나 죽기 전에 와야지?”라고 말한다. 작가는 “그 말을 듣는 순간 갑자기 내가 뭔가 잘못한 것 같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작가가 집을 팔지 않고 떠나는 데는 이런 이유도 있다. 미우나 고우나, 사람 사는 건 실버아파트라고 다를 게 없었던 것이다.
<초보노인입니다>는 글을 읽는 재미가 있다. 작가가 겪은 새로우면서 낯선 세계가 ‘웃픈’ 현실로 다가온다. 웃긴 데 슬프고, 슬픈 데 웃기다. 책 속 이야기들이 어떻게 보면 소설을 읽는 것 같기도 하고, 어떤 측면에선 또 일일 드라마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다. 작가는 이 이야기들로, ‘제10회 브런치북 대상’을 수상하고 그 끝에 책까지 찍어낸다.
노인으로 살아가는 데도 공부가 필요하다. 초보들이 흔히 저지를 수 있는 황당한 실수를 피하기 위해서다. 작가는 책 말미에 “실버들, 특히 초보 실버기에 들어선 이들에게 나처럼 당황하지 않길, 끝까지 담담하며 당당하기를”이라는 말을 남긴다. 그런 거 저런 거를 다 떠나서, 실버아파트 입주를 고려하는 사람들이라면, 사전에 꼭 이 책을 읽어두길 바란다.